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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떄 그시절] 조선시대 임진왜란 거북선은 몇대정도 있었을까? - (거북선 건조 비용)

by 뉴스이것저것주세요 2026.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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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거북선 몇대정도 보유 했을까?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거북선 수십 대가 바다를 뒤덮으며 왜군을 무찌르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 임진왜란 당시에 활약한 거북선은 생각보다 훨씬 적은 3대 ~ 5대 정도였습니다.

 

많은 분이 "그렇게 큰 전쟁에 겨우 그것밖에 없었다고?"라며 놀라곤 하시는데요. 이순신 장군의 기록을 통해 정확한 수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쟁 초기: 단 3대

이순신 장군의 친필 일기인 《난중일기》와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인 《임진장초》를 보면, 전쟁 초기(1592년 한산도 대첩 등)에 활약한 거북선은 총 3척이었습니다.

 

이 3척은 전라좌수영 산하의 각 진포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본영귀선 (1척): 이순신 장군이 있던 전라좌수영 본영(여수) 소속 방답귀선 (1척): 방답진(여수 돌산) 소속

순천귀선 (1척): 순천부 소속

 

2. 전쟁 중기: 최대 5대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595년, 조선이 명나라에 보낸 외교 문서에는 "한산도에 거북선 5척이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즉,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2척을 더 건조하여 최대 5척까지 운용했던 것이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수량의 정점이었습니다.

 

3. 칠천량 해전의 비극과 명량 해전

안타깝게도 이 5척의 거북선은 1597년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할 때 모두 침몰하거나 소실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단 13척의 배로 기적을 만들어낸 명량 해전(1597년) 당시에는 거북선이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이후 전쟁 막바지인 노량 해전 즈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1~2척을 다시 건조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왜 거북선을 더 많이 만들지 않았을까요?

거북선은 바다를 메우는 주력 함선이 아니라, 적진 한가운데로 돌격해 진형을 무너뜨리는 '특수 돌격선' 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수군의 진짜 주력 함선은 거북선보다 덩치가 크고 대포를 많이 실었던 판옥선이었으며,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뚜껑을 덮어 개조한 형태였기에 많이 만들 이유도, 재정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십, 수백 대의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평화기가 찾아온 조선 후기(숙종, 정조 시대)에 수군 체제를 재정비하면서 전국적으로 150 ~ 182대까지 늘어난 것입니다.

 

임진왜란의 영웅 거북선은 수적으로는 몇 대 안 되었지만, 그 적은 수로 왜군에게 엄청난 공포를 심어주며 전쟁의 판도를 바꾼 대단한 무기였습니다.

 

역사 속 거북선의 숨겨진 기록이 더 궁금하시다면, 태종 시절에 등장했던 조선 최초의 거북선 기록 영상을 참고해 보세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무려 180년 앞서 등장한 거북선의 유래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내용 이해할 수 있게 참고형 이미지 입니다.~ (거북선 건조)

 

 

거북선 건조 비용 얼마정도 들까?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1대를 만드는 데 든 구체적인 '전체 엽전 액수'가 기록된 조선 시대 조정의 예산 명세서는 아쉽게도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조선 전기의 군선 건조는 물품을 사고파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보유한 원자재와 강제 징집된 인력을 동원하는 '국가 동원 체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들어간 자재의 양, 투입 인력, 현대의 복원 비용을 기반으로 추정해 보면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1. 현대 가치로 환산한 건조 비용: 약 15억 ~ 20억 원

현대에 역사학자들과 선박 제조 전문가들이 고증을 거쳐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길이 약 26m, 3층 구조, 대형 함선 규모)을 원형 복원할 때 드는 비용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 실제 복원 비용: 2010년대 이후 지자체에서 국내산 소나무(금강송)와 전통 공법을 사용해 거북선 1척을 제대로 건조할 때 약 16억 원에서 2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기술력과 자급 자족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120톤에 달하는 거대 목조 전함을 만드는 것은 현대의 중형 군함이나 특수 선박을 건조하는 것만큼이나 국가적인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2. 들어간 자재와 인력으로 보는 규모

조선 시대 기록을 바탕으로 거북선의 모체가 된 '판옥선'의 건조 기준을 대입해 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자재가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목재 (소나무 8만 재 이상): 거북선은 충격을 견디고 대포의 반동을 버텨야 하므로 가볍고 약한 삼나무 대신 단단하고 무거운 조선 소나무(황장목·금강송)를 썼습니다. 1척을 만드는 데 대략 8만 재(才) 이상의 목재가 필요했는데, 이는 아름드리 소나무 수백 그루를 베어내야 하는 양입니다.

 

※ 철물 (약 3~4톤 이상): 거북선의 상판을 덮은 덮개와 송곳, 장갑용 철판, 그리고 거대한 목재들을 고정하기 위한 쇠못 등이 대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철'은 매우 귀한 전략 물자였습니다.

 

※ 인력 (수백 명의 장인과 군인): 선박 제조 전문가인 '선장(船匠)'과 목수, 철공 장인 수십 명을 비롯해 나무를 베고 운반하는 역군(군인 및 노비) 수백 명이 동원되어 최소 3~5개월 동안 매달려야 1척이 완성되었습니다.

 

3. 당시 '쌀' 가치로 비추어 본 체감 위상

당시 군관들의 녹봉이나 물가를 기준으로 간접 비교해 보면, 거북선 1척의 가치는 국가 재정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마필(말) 1필의 가격이 쌀 50  ~60가마(섬) 정도였습니다.

 

거북선 1척을 건조하는 데 들어간 자재비와 인부들의 식비(양식), 장인들의 인건비 등을 당시 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쌀 수천 석(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거대한 자산이었습니다.

 

한 줄 요약하자면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1대를 만드는 데 든 비용은 국가 전략 물자인 최고급 소나무 수백 그루와 수톤의 철물, 수백 명의 인력이 몇 달간 동원된 규모로, 현대 경제 가치로 치면 최소 15억 ~ 20억원 상당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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